16 자본주의의 교리

근대 경제사를 알기 위해서 정말로 이해할 필요가 있는 단어는 하나 밖에 없다. '성장growth'이란 단어다.(431)

모든 기업은 ~상상된 미래에 대한 신뢰 위에 세워져 있다. 기업가와 은행가가 자신들이 꿈꾸는 빵집에 보내는 신뢰에, 그리고 은행의 미래 지불능력에 대해 도급업자가 지니고 있는 신뢰에.~하지만 근대 이전에는 이 능력이 제한적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돈이 대표하고 전환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현재 실제로 존재하는 것뿐이었다. (434)

~근대에 이르러서~미래에 대한 신뢰를 기초로 한 새로운 시스템이 등장한 것이다.~'신용'이라 불리는 특별한 종류의 돈(435)~
신용은 미래를비용으로 삼아 현재를 건설할 수 있게 해준다. 신용은 우리의 미래 자원이 현재 자원보다 훨씬 더 풍부할 것이라는 가정을 토대로 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미래의 수입을 이용해서 현재에 무엇을 건설할 수 있다면, 새롭고 놀라운 기회가 수없이 많이 열린다.
~어째서 아무도 좀 더 일찍 그것을(신용을) 생각해내지 못했을까?~옛 시대의 문제점은 아무도 그런 아이디어를 떠올리지 못했다거나 활용할 방법을 알지 못했다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신용을 크게 확장하려는 경우가 드물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미래가 현재보다 나을 것이라고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보통 자기 시대보다 과거가 더 좋았으며 미래는 현재보다 더 나쁘거나 기껏해야 지금과 같을 것이라고 믿었다.(436)

지난 5백 년간 진보라는 아이디어는 사람들로 하여금 미래를 점점 더 신뢰하게 만들었다. 신뢰는 신용을 창조했고, 신용은 현실 경제를 성장시켰으며, 성장은 미래에 대한 신뢰를 강화하고 더 많은 신용을 향한 길을 열었다. (439)

(애덤) 스미스의 주장- 개인적인 수익을 늘리려는 이기적 인간의 욕구는 공동체 부의 기반이다.-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혁명적인 아이디어에 속한다. 경제적 관점에서뿐 아니라 도덕적, 정치적 관점에서는 더더욱 혁명적이다. 스미스는 사실상 탐욕이 선한 것이며, 내가 부자가 되면 나만이 아니라 모두에게(440) 이득이 된다고 말한 것이다. 이기주의가 곧 이타주의라고.

하지만 이 모든 것에는 전제가 있다. 부자가 자신의 수익을 비생산적인 활동에 낭비하지 않고 공장을 새로 새우고 사람들을 새로 고용하는 데 쓴다는 전제다. ~이 윤리에 따르면 이윤은 생산에 재투자되어야 한다. 재투자는 더 많은 수익을 가져오고, 이것은 다시 생산을 위해 투자되어서 더 많은 이윤을 낳으며, 이 과정(441)은 무한정 되풀이된다.

자본주의가 '자본주의'라고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본주의는 '자본'을 단순한 '부'와 구별한다. 자본이란 생산에 투자되는 돈과 재화와 자원을 말한다. 반면에 부는 땅에 묻혀 있거나 비생산적 활동에 낭비된다. 비생산적인 피라미드에 자원을 쏟아붓는 파라오는 자본주의자가 아니다. ~하지만 열심히 일해서 수입의 일부를 주식시장에 투자한 공장 노동자는 자본주의자다. (442)

자본주의는 경제가 어떻게 기능하는지에 대한 이론으로서 시작되었다. 그 이론은 기술記述적인 동시에 규범적이었다. 그 이론은 돈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설명했고, 수익을 생산에 재투자하면 경제가 빠르게 성장한다는 아이디어를 선전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점차 경제적 교리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되었다. 이제 자본주의에는 하나의 윤리가 포함되어 있다. 사람들에게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아이를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지, 심지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까지 일러주는 가르침들이다. 그중 가장 핵심 신조는 경제 성장이 최고의 선이라는 것, 최소한 그 대용품은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정의와 자유, 심지어 행복까지도 경제성장에 좌우되기 때문이다.(444)

네덜란드인들은 정확히 어떻게 금융제도의 신뢰를 얻었을까? 첫째, 이들은 기일에 맞춰 전액을 반드시 갚았다.  그래서 대부업자들에게 신용을 얻었다. 둘째, 사법제도가 독립되어 있는 데다 사적 권리, 그중에서도 사유재산권을 보호했다. 자본은 민간인들의 재산을 보호해주지 않는 독재국가에서 새어나와 법치와 사유재산권이 있는 국가로 흘러들어갔다.(451)~
네덜란드 제국을 세운 것은 네덜란드라는 국가가 아니라 상인들(453)이었다.(454)

오늘날 한 나라의 신용등급이 천연자원보다 경제적 복지에 미치는 영향이 훨신 더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용등급은 그 나라가 부채를 갚을 가능성을 가리킨다. 순수한 경제적 데이터 외에도 정치, 사회, 심지어 문화적 요인을 고려해서 매긴다. 석유가 풍부한 나라라도 독재 정부에 전쟁이 만연하고 사법제도가부패해 있다면 등급이 낮은 것이 보통이다. 그 결과 이 나라는 상대적 빈곤국으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 석유자원이 최대한 활용하는 데 필요한 자본을 모을 수 없기 때문이다. 거꾸로 천연자원이 없더라도 평화를 유지하며, 사법제도가 공정하고, 자유정부를 가진 나라는 신용등급을 높게 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이 나라는 싼 대가로 많은 자(463)본을 모아 좋은 교육제도를 지원하고 하이테크 산업을 육성하는데 사용할 수 있다.

열렬한 자본주의자는 자본이 저잋에 자유로이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하지만 정치가 자본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면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현명치 못한 투자를 하게 되고 그 결과 경제성장이 느려진다는 것이다. ~많은 사업가의 견해에 따르면 정부는 기업이 돈을 마음대로 쓰게 내버려두는 편이 훨씬 낫다. 

이런 견해에 따르면, 가장 현명한 경제정책은 정치를 경제로부터 분리하고, 과세를 줄이고 정부 규제를 최소화하며, 시장의 힘이 자유롭게 제 갈 길을 가도록 하는 것이다.(464)

이런 자유시장 교리는 자본주의 교리의 가장 흔하고 영향력 있는 변종에 해당한다. 가장 열렬한 자유시장 지지자들은 국내의 복지 정책을 비판할 때만큼이나 열성적으로 해외에서의 군사적 모험을 비판한다. 이들이 정부에게 주는 조언은 선禪 전문가가 입문자에게 하는 조언과 동일하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하지만 극단적인 자유시장 신봉주의는 산타클로스가 존재한다는 믿음만큼이나 순진한 것이다. 모든 정치적 편견에서 자유로운 시장 같은 것은 원래 없는 법이다. 가장 중요한 경제적 자원은 미래에 대한 믿음인데, 이 자원은 도둑들과 사기꾼들에 의해 끊임없이 위협당하고 있다.(465)

자유시장 자본주의는 이윤이 공정한 방식으로 얻어지거나 공정한 방식으로 분배되도록 보장하지 못한다. 그렇기는커녕, 이윤과 생산량을 늘리려는 갈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이 없다. 성장이 최고의 선이 되고 다른 윤리적 고려에 의한 제약을 받지 않을 때, 그 성장은 쉽사리 파국으로 치닫는다.(468)

농업혁명과 마찬가지로, 현대 경제의 성장은 거대한 사기로 드러날지도 모른다. 인류와 세계 경제는 성장을 더듭해을지라도 기아와 궁핍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은 더욱 많아졌는지도 모른다.(471)

 

사피엔스(2015), 유발 하라리,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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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인공을찾는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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