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끝없는 혁명
전통 농업은 자연의 시간과 유기적 성장의 주기에 의존했다.
중세 농부나 구두공과는 달리 현대 산업은 태양이나 계절을 거의 상관하지 않는다. 대신 정밀성과 획일성을 신성시한다.~한 명의 출근이 늦는다 해도 그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일이 늦어지지는 않는다. (498)
모든 노동자는 정확히 같은 시간에 직장에 도착한다. ~자기 일이 끝났을 때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산업혁명은 시간표와 조립 라인을 거의 모든 인간 활동의 틀로 변화시켰다. 공장이 자신의 시간표를 인간들의 행동에 강요한 직후부터 학교 역시 정확한 시간표를 채택했으며, 병원과 정부기관, 식품점이 그 뒤를 따랐다. 심지어 조립 라인과 기계가 없는 장소에서도 시간표가 왕이 되었다.
시간표 체계가 확산된 결정적 고리는 대중교통이었다.~작업이 몇 분만 늦어져도 생산성은 떨어지고 심지어 불운하게 지각한 사람은 해고될 위험까지 있다.~시간표에 명시된 것은 출발시간뿐이었다. 도착 시각은 없었다.(499)
마침내 1880년 영국 정부는 영국의 모든 시간표는 그리니치를 따라야 한다는 그리니치를 따라야 한다는 법률을 제정했다. 이것은 전례없는 일이었다. 역사상 처음으로 한 나라가 국가 시간을 채택하고 국민들에게 현지 시각이나 해가 뜨고 지는 주기 대신에 시계에 맞춰 살기를 강요한 것이다. 이처럼 대수롭지 않았던 시작은 결국 몇십 분의 일 초까지 똑같이 맞추는 세계적 시간표 네트워크를 낳았다.(500)
산업혁명은 인류사회에 수십 가지의 커다란 격변을 불러왔다. 산업적 시간~도시화, 농민의 소멸, 산업 프롤레타리아의 등장, 보통 사람들에게 주어진 힘, 민주화, 청년문화, 가부장제의 해체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격변들조차 역사를 통틀어 인류에게 닥친 가장 중요한 사회혁명에 대면 시시했다. 그것은 바로 가족과 지역 공동체가 붕괴하고 국가와 시장이 그 자리를 대신한 사건이다.~가족과 공동체가 수행하던 전통적 기능은 대부분 국가와 시장에게 넘어갔다.(502)
산업혁명 이전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위했던 일상은 핵가족, 확장된 가족, 지역의 친밀한 공동체라는 세 가지 오래된 틀 속에서 이루어졌다.
어떤 사람이 병에 걸리면 가족이 그를 보살폈다.~하지만 병이 너무 심하게 걸려서 가족이 어떻게 다룰 수 없을 정도가 되거나 새로운 사업이 너무 큰 투자를 필요로 하거나, 이웃과의 분쟁이 폭력으로 확대되는 경우, 지역 공동체가 해결사로 나섰다.
공동체는 지역 전통과 호혜의 경제를 기반으로 도움을 제공했다.(503)~내가 도움을 필요로 하면 이웃이 내 호의를 다시 갚았다.
마을의 삶에는 많은 거래가 있었지만 지불이 뒤따르는 경우는 드물었따. 물론 시장도 일부 존재했지만 그 역할은 제한적이었다.~인간의 필요 대부분은 가족과 공동체의 보살핌으로 충족되었다.
왕국이나 제국도 존재하여, 전쟁을 벌인다거나 도로를 닦고 왕국을 건설하는 등의 중요한 업무를 수행했다. 이런 목적을 위해 왕들은 세금을 징수했으며, 때때로 병사와 노동자를 징집했다. 하지만 드문 예외를 제하면 왕들은 가족과 공동체의 일상사에 관여하지 않으려 했다. ~전통적 농업 경제체제는 수많은 정부 관료, 경찰, 사회복지사, 교사, 의사를 먹여 살릴 만큼의 잉여분을 거의 생산하지 못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통치자는 대중 복지체제, 의료체제, 교육체제를 발전시키지 않았다. 그런 문제는 그냥 가족과 공동체의 손에 맡겼다.(504)
멀리 떨어진 곳의 공동체 일에 개입하기에는 수송과 통신이 너무나 불편할 때가 많았기 때문에 많은 왕국이 왕의 가장 기본 특권인 과세와 폭력행사를 공동체에 양도하는 쪽을 선호했다.(505)
가족과 공동체 품 안에서 사는 삶은 이상적이진 않았다. 가족과 공동체의 억압은 오늘날 국가와 시장의 그것보다 덜하지 않았다. 그 내적 역학은 긴장과 폭력으로 가득하기 일쑤였지만, 사람들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산업혁명은 시장에 막대한 새 힘을 주었고,~ 세월이 흐르면서 국가와 시장은 점점 커지는 권력을 이용해 가족(506)과 공동체의 전통적 결속력을 약화시켰다.
국가와 시장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접근했다.~ "개인이 되어라. 누가 되었든 네가 원하는 사람과 결혼하라. 부모의 허락을 받을 필요는 없다. 네게 맞는 직업을 택하라. 그 때문에 공동체의 연장자가 눈살을 찌푸리더라도. 어디가 되었던 네가 원하는 곳에서 살아라. 그 때문에 가족 만찬에 매주 참석할 수 없게 되더라도. 당신은 더 이상 가족이나 공동체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그 대신 우리, 즉 국가와 시장이 당신을 돌볼 것다. 식량과 주거, 교육과 의료, 복지와 직업을 제공할 것이다. 연금과 보험을 제공하고 당신을 보호해줄 것이다."(507)
개인의 해방에는 댓가가 따른다. 현대의 많은 사람이 강력한 가족과 공동체를 상실한 데 대해 슬퍼하며, 인간미가 없는 국가와 시장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력 때문에 소외되고 위협당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소외된 개인으로 구성된 국가와 시장은 강력한 가족과 공동체로 구성된 국가와 시장에 비해 그 구성원들에게 훨씬 더 쉽게 개입할 수 있다.
수백만년에 걸친 진화의 결과, 우리는 스스로를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생각하면서 살아가도록 설계되었지만, 불과 2세기 만에 우리는 소외된 개인이 되었다. 문화의 무시무시한 힘을 이보다 더 잘 증언하는 사례는 없다.
현대사회에서도 핵가족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국가와 시장은 경제적, 정치적 역할의 대부분은 가족에게서 빼앗으면서도 일부 주요한 감정적 기능은 남겨두었다.(509)
지난 2세기 동안 친밀한 공동체는 말라죽었고, 그에 따른 감정적 공백을 채우는 역할은 상상의 공동체가 맡게 되었다.
상상의 공동체가 부상한 사례 중 가장 중요한 두 가지가 국민과 소비 공동체이다. 국민은 국가가 만든 상상의 공동체다. 소비 공동체는 시장이 만든 상상의 공동체다. 둘 다 상상의 공동체임에 분명한 까달은 시장의 모든 고객이나 한 국가의 모든 국성원이 과거 한 마을 사람들이 서로 알던 것만큼 실제로 잘 아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돈이나 유한회사, 인권과 마찬가지로, 국민과 소비 공동체는 상호 주관적 실체다. 이것들은 오로지 우리의 집단 상상 속에만 존재하지만, 그 힘은 막강하다.(512)
최근 몇십 년간 국가 공동체는 소비자 집단에 의해 점점 더 빛을 잃어왔다. 소비자 집단은 서로 직접 잘 알지는 못하지만 소비 습관과 관심이 동일하고,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동일한 공동체의 일부라고 느끼며 자신을 그렇게 규정한다.(514)
지난 2세기에 걸쳐 일어난 혁명들은 워낙 빠르고 과격한 나머지 사회질서의 가장 근본적인 특성 대부분을 변화시켰다. 전통적으로 사회질서는 단단하고 고정된 무엇이었다. '질서'는 안정성과 연속성을 의미했다. 급격한 사회혁명은 예외였고, 대부분의 사회 변화는 수많은 작은 단계가 축적된 결과였다. 사람들은 사회구조란 확고하며 영원하다고 가정하는 경향이 있었다. 가족과 공동체가 그 질서 내에서 자신이 차지하는 위치를 변화시키려 분투할 수는 있었지만, 스스로 질서의 근본구조를 바꿀 수 있다는 발상은 낯선 것이었다. 사람들은 "이것은 과거에도 늘 그랬고 앞으로도 늘 이렇게 이어질 것야"라고 선언하면서 현재 상태를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다.
지난 2세기 동안 변화의 속도는 너무나 빨라고, 그런 나머지 사회질서는 동적이고 가변적이라는 속성을 지니게 되었다.(515)
그러므로 현대 사회의 속성~끊임없는 변화다.(516)
역사의 판은 미친 듯한 속도로 움직이지만, 화산은 대체로 조용하다. 새로 출현한 탄력적 질서는 질서가 붕괴되어 격렬한 분쟁이 일어나게 하지 않으면서도 급격한 구조적 변화를 억제하거나 반대로 촉발할 능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517)
사피엔스(2015), 유발 하라리,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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