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자율성을 중시했던 고대 그리스
그리스인들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확신이 유독 강했다. 그 시대의 다른 문화권에서는 왕의 한마디가 곧 법이었(27)~통치자의 입장에서도 개인에게 그러한 자유를 허용하는 것은 매우 위협적인 일이었으므로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그리스인들은 ~자신의 삶은 스스로 주관하는 것이므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는 확인을 가지고 있었다.~그리스인들이 정의하는 행복이란 '아무런 제약이 없는 상태에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탁월성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개인의 자율성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강한 신념은 개인 정체성에 대한 강한 인식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들은 인간을 '독특한 특성과 목표를 가진 상호 개별적인 존재로'로 파악했다.~
'개인의 자율성'을 중시하였던 고대 그리스 문화는 자연스레 논쟁의 문화를 꽃피웠다.(28)~
논쟁은 저자거리에서도, 의회에서도 벌어졌으며 심지어는 위계 질서가 엄격한 군대 내에서도 일어났다. 다른 문화권에서와는 달리 그리스에서는 국가의 중대사에서부터 매우 사소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많은 일들이 공개적인 논쟁을 통하여 결정되었다.
그리스 문화에서는 자유와 개성만큼이나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중시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호기심이야말로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특성이라고 주장했다. ~호기심은 그리스 문화가 물리학, 천문학, 기하학, 형식논리학, 이성철학, 민속지학 같은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세우는 데 원동력으로 작용했다.(29)~
오직 그리스 문화만이 ~관찰을 통하여 어떤 '원리(principle)'를 발견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기본 원리를 추구하는 행위' 자체가 그리스인들에게는 큰 즐거움이었다. 영어의 'school'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schole'가 '여가(leisure)'를 의미한다는 것만 보아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그리스인들에게 있어서 여가란 다름 아닌 지식을 추구하는 자유를 의미했다.
개인의 '관계'를 중시했던 고대 중국
그리스에서 개인의 자율성이 중요했다면, 중국에서는 조화로운 인간 관계가 중요했다.~그리스인들에게 있어서 개인이 특정 상황에 구속되어 있지 않은 독립적인 존재였다면, 중국인들에게 있어서 개인은 '특정 집단에 소속된 구성원'이었다. 그리스인들이 연극이나 시 낭송을 관람하는 것을 특별한 일로 생각한 반면, 동시대의 중국인들은 친구나 친척을 방문하는 것을 특별한 행사로 여겼다. (30)~
그리스인들에게 행복은 '자신의 자질을 자유롭게 발휘하는 것'이었지만, 중국인들에게 행복이란 '화목한 인간 관계를 맺고 평범하게 사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그리스의 꽃병이나 술잔에는 전투나 육상 경기처럼 개인들의 경쟁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 반면, 중국의 도자기나 화폭에는 가족의 일상이나 농촌의 한가로운 정경이 자주 등장한다.
그렇다고 해서 고대 중국인들이 권력자나 가족의 권위에 한없이 휘둘리기만 하는 무력한 존재였던 것은 아니다. 단지 그들에게는 개인의 자율성보다는 '집단의 자율성'이 우선이었을 뿐이다. (31)
중국인의 일상에서 개인의 권리란 '자신의 원하는 대로 행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권리 중 자신의 몫을 담당하는 것'이었다. (32)
사물의 본질을 중시하는 그리스의 철학
본질(essence)이란 한 사물의 가장 핵심적이고 필수 불가결한 속성이다. 본질이 바뀌면 그것은 더 이상 그 사물이 아니다. 본질적이지 않은 속성은 '우연적(accidental)' 속성이다. 예를 들어 음악적 재증이 전혀 없던 사람에게 갑자기 음악적 재능이 생긴다고 해도 그 사람은 전혀 없던 사람에게 갑자기 음악적 재능이 생긴다고 해도 그 사람은 여전히 그 사람일 뿐이다. 음악적 재능은 '우연적 속성'이기 때문에 그 삶의 본질을 바꾸지 못한다.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습관적으로 행한 작업 중 하나는 사물의 속성을 분석하고, 그 추상화된 속성에 의거하여 사물을 범주화하는 것이었다. 그런 후에 각 범주를 지배하는 규칙들에 근거하여 그 범주에(35) 속하는 사물드르이 특징과, 그 사물들의 행위의 원인을 설명하고자 했다. ~'사물 자체'를 분석과 주의(attention)의 대상으로 삼는 그리스의 철학 정신에 기인한다. 그리스인들은 사람뿐만 아니라 물질 역시 서로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실체로 간주했다. ~1) 사물의 속성 자체에 주의를 기울이고, 2) 그 속성에 근거하여 범주화하고, 3) 그 범주들을 사용해 어떤 규칙을 만들어, 4) 사물들의 움직임을 그 규칙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그리스 철학의 또 다른 특징은 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는 고정된 것으로 보았다는데 있다.(36)~
그리스 철학자들은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 '직선적(linear)'사고와 '이것 아니면 저것(either-or)'의 이분법적 사고 방식에 집착했다.(37)
사물의 관계를 중시하는 중국의 철학(38)
그들에게 세상은 늘 변하며 모순으로 가득 찬 곳이다. 따라서 어떤 일이 경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반대 경우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지금은 옳다고 여겨지는 것이 나중에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음(陰)'(여성적이고 어둡고 수동적인 것)과 '양(陽)'(남성적이고 밝고 적극적인 것)은 서로 반복된다. 음은 양 때문에 존재하고 양은 음때문에 존재하며, 세상이 현재 음의 상태에 있으면 곧 양의 상태가 도래할 것이라는 징조이다.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길'을 의미하는 도(道)의 상징은 흰색과 검은색 물결의 형태를 띤 두 힘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진정한 양은 음 속에 존재하는 양이고, 진정한 음은 양 속에 존재하는 음이다'라는(39)진리를 나타낸다. 음양의 원리란 '서로 반대되면서 동시에 서로를 완전하게 만드는 힘', '서로의 존재 때문에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힘'의 관계이다.(40)
유교, 도교, 불교 모두 '조화', '부분보다는 전체', '사물들의 상호 관련성'이라는 공통 관심사를 가지고 있었다. 세 철학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종합주의(holism)'는 우주의 모든 요소들이 서로 관련되어 있다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종합주의라는 개념은 공명(resonance)현상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현악기의 한 줄을 건드리면 공명에 의해 다른 줄이 울게 되듯이 인간, 하늘 땅은 서로에게 이런 공명을 일으킨다. 만일 땅에서 군주가 나쁜 일을 하면 우주의 상태 역시 나빠진다는 믿음이 바로 이러한 종합적 사고의 예이다.(43)
그리스가 이룩한 가장 위대한 과학적 발견은 '자연계'라는 개념 자체의 발견이다. 그리스인들은 인간과 인간의 문화를 제외한, 우주의 나머지 부분으로 규정하였다. ~그리스인들은 어떻게 자연계에 대해 ~독특한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그에 대한 부분적인 해답을 그들의 객관적인 외부 세계와 주관적인 내부 세계의 구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구분은 그리스 논쟁의 전통에서 기인한 듯하다. 즉, 논쟁을 통해 남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현실에 대해 자신이 남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는 믿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현실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에 있어서 내가 상대보다 더 정확하다는 신념이 있을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설득이 가능하다.(45)
실제로 객관성은 주관성에서 비롯된다. 사람들마다 세상을 보는 시각이 제각각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면, 세상은 그러한 각각의 인식들과는 무관한 객관적인 실체라는 판단에 이르게 된다. 그리스인들의 이러한 깨달음은 아마도 그리스가 무역의 중심국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자유 무역을 통해 세상에 대한 인식이 매우 다른 사람들을 정기적으로 만났으니 말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중국은 일찍부터 통일된 문화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중국인들이 그들과 전적으로 다른 철학적. 종교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상대적으로 드문 일이었다.
그리스인들이 '자연계'의 개념을 발견하면서 과학이라는 것이 생겨났다. 중국인들이 과학을 일찍 발전시키기 못한 것은~'인간계와는 독립적인 실체로서의 자연계'라는 개념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개별 사물과 그것의 속성에 집착한 탓에 그리스인들은 아주 기본적인 인과 관계를 파악하는데 실패하였다. ~주 초점은 오로지 대상 자체이며, 그 대상을 둘러싼 외부의 힘을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이와는 달리, 중국인들은 우주를 서로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장(場)으로 보았기 때문에~(46) 그들은 어떤 일이든지 수많은 힘들이 상호 작용하는 장 안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것들 사이에서도 힘이 작용한다(action at a distance)'라는 사실은 갈릴레오 훨씬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47)
중국인들이 일찍이 우주의 복잡성을 이해하여, 사물을 파악할 때 부분보다는 전체 맥락을 중시한 점은 매우 타당한 접근~그러나 범주화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어떤 범주에 존재하는 규칙을 무시함으로써 그 범주에 속하는 개체들의 행동을 효과적으로 설명하지 못한 것은 아쉬운 점~그리스인들은 세상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어떤 사물의 추상적인 속성에 의거하여 그 사물의 행동을 설명하려 하는 과오를 범하기는 했지만, 여러 개체들을 범주화하여 공통의 규칙을 부여해야 한다는 사실만은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스인들의 범주에 대한 집착은 과학의 발전과 이후의 지적 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다.(49)
그리스인들은 '모순'이라는 개념에 강박적이라 할 만큼 집착했다. 어떤 주장이 다른 주장과 모순 관계에 있다면, 둘 중 하나는 반드시 그릇된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비모순의 원리(principle of noncontradiction)는 형식 논리에서 가장 기본적이다. 왜 유독 그리스인들만이 논리를 만들어냈는지에~그리스가 논쟁을 중시하는 사회였기 때문~논쟁을 하다보면, 어떤 주장은 스스로 모순에 빠져 금세 설득력 없는 주장으로 심판받는다.(50)
리처드 니스벳(2004), 생각의 지도,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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