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과 서양의 서로 다른 자기 개념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지극히 상식적인 것으로 ~자기 개념(self-concept)을 묻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문화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미국과 캐나다인드은 주로 성격 형용사(친절하다, 근면하다)를 사용하거나, 자신의 행동(나는 캠핑을 자주 한다)을 서술한다. 이에 반해, 중국, 일본 그리고 한국 사람들은 주로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적 맥락을 동원하여 대답하고(예를 들어, '나는 친구들과 노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직장에서 아주 열심히 일한다'), 또한 자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많이 언급한다.(53)

인류학자인 에드워드 홀(Edward Hall)은 ~'저맥락(54)(low context)' 사회와 '고맥락(high context)' 사회의 구분을 통해 설명하였다. 저맥락 사회인 서양에서는 사람을 맥락에서 떼어내어서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하므로, 개인은 맥락에 속박되지 않은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행위자로서 이 집단에서 저 집단으로, 이 상황에서 저 상황으로 자유롭게 옮겨 다닐 수 있다. 그러나 고맥락 사회인 동양에서 인간이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유동적인 존재로서 주변 맥락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철학자 도널드 먼로의 표현을 빌자면 동양인들은 인간을 "가족이나 사회 혹은 도의 원리와 같은 전체와의 관련성 속에서 파악한다." 인간은 '인간 관계 속에서' 행동하고 있기 때문에 완전하게 독립적인 행위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리 바람직한 일도 아니다. 동양인에게 있어서 행위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의해 조정되고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 관계에서 조화를 유지하는 것이 사회 생활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된다.
동양인들은 자신들이 속한 내집단에 대해서는 강한 애정을 보이지만, 외집단이나 그저 아는 사이인 사람들에게는 상당한 거리를 둔다.~그러나 서양인들은 자신과 내집단 사이에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싶어하며, 내집단원이나 외집단원을 크게 구분하지 않는 보편주의적 행동 원리를 따른다.(55)

서양의 독립성과 동양의 상호의존성

퇴니스(Tonnies)의 공동사회(Gemeninschaft)와 이익사회(Gesellschaft)의 구분과 유사하다. 공동사회란 사람들 간의 인간 관계에 기초한 사회로서, 서로에 대한 의무와 상호 일체감에 근거하고 있다. 가족이나 교회 공동체, 그리고 친구 집단이 여기에 해당한다. ~서로에 대한 애정, 빈번한 대면 접촉, 공유된 경험, 심지어는 공유된 소유가 사회의 밑받침이 된다. 반대로 이익사회는 어떤 목적을 염두 둔 '수단으로서의 관계'에 기초하고 있다. 이 사회에서는 재화와 노동의 빈번한 교류가 발생하고, 협상과 계약이 사회 운영의 중요한 원리가 되며, 개인의 이익 추구와 경향이 장려된다. 기업이나 관료 제도가 이러한 관계의 예이다.
물란 한 사회가 전적으로 공동 사회이거나, 혹은 전적으로 이익(60)사회라고 하는 극단적인 주장에는 아무도 동의하지 않는다. 어느 사회든 사회든 두 요소가 동시에 혼재하고 있다. ~문화심리학의 용어로는 공동사회는 대개 '집합주의적' 사회를 지칭하고, 이익사회는 '개인주의적'사회를 지칭한다. 그리고 사회림리학자인 헤이즐 마커스와 시노부 기타야마(Shinobu Kitayama)가 제안한 '독립성(Independence)'과 '상호의존성(Interdependence)'이라는 용어들도 비슷한 개념~
독립성과 상호의존성에 대한 훈련은 아이들의 잠자리에서부터 시작된다.(61)

사회심리학자인 시나 이옌가(Sheena Iyengar)와 마크 래퍼(Mark Lepper)의 실험~7살에서 9살까지의 미국, 중국, 일본의 아이들에게 애너그램(anagram) 과제를 주었다. 애너그램 과제란 흐트러지 철자를 이용해서 단어를 만드는 과제로~ 이 과제에는 세 가지 조건이 있었다. 첫번째 조건에서는 실험자가 아이들에게 어떤 애너그램을 풀 것인지를 지정해주었다. 두 번째 조건에서는 아이들 스스로 선택하도록 했고, 마지막 조건에서는 아이들의 어머니가 특정 애너그램을 풀도록 지시했다고 알려준 다음 지정된 것을 풀도록 했다.
그런 후에 각 조건의 아이들이 그 과제를 얼마나 잘 푸는지, 그(62)리고 얼마나 오랫동안 집중하여 푸는지 측정하였다. 그 결과 미국 아이들은 자신들이 스스로 선택한 조건에서 가장 강한 학습 동기를 나타냈고., 어머니가 선택해준 조건에서 가장 낮은 동기를 보였다. ~그러나 ~동양 아이들은 어머니가 선택해준 조건에서 가장 강한 학습 동기를 보였다!~
미국의 어머니들은 자녀와 함께 놀이를 할 때 특정 사물에 초점을 맞추고 그 사물의 속성을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반면에 일본의 어머니들은 사물의 '감정'에 특별히 신경을 써서 가르친다. 특히 자녀가 말을 안 들을 때에 그러하다. 예를 들어 "네가 밥을 안 먹으면, 고생한 농부 아저씨가 얼마나 슬프겠니?,"인형을 그렇게 던져버리다니, 저 인형이 울고 있잖아!", "담당이 아야 아프다고 하잖아!" 같은 말들로 꾸중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사물의 속성 자체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훈련받은 아이들은 스스로 독립적인 행동을 하도록 교육받지만,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훈련을 받은 아이들은 자신의 행동에 영향을 받는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미리 예측하도록 교육받는다.
타인의 감정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는 훈련의 효과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나타난다. 서양인에 비해 동양인들이 타인의 진짜 속마음과 감정을 잘 읽어낸다고 한다.(63)

서양인들은 보편주의와 같은 추상적인 규칙을 모든 사람에게 적용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어떤 특수한 상황 때문에 규칙을 저버리는 행위는 부도덕한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동양인들의 눈에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규칙을 적용하는 것이 지나치게 고지식하고 때로는 비정하게까지 보인다.(68)

서양 사람들의 '보편적인 규칙에 대한 집착'은 개인과 개인, 조직과 조직 사이의 계약에 대한 생각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들은 계약이란 한번 맺어지면 영원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설사 상황이 변해서 계약 내용이 한쪽에게 불리해지더라도 계약을 변경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상호의존적이며 고맥락 사회인 동양에서는 상황이 변하면 계약의 내용도 바꾸리 수 있다고 믿는다.(69)

독립성이냐 상호의존성이냐는 반드시 양자택일의 문제는 아니다. ~두 가지 속성이 혼재되어 있다. 그중 어떤 속성이 더 부각되느냐는 의외로 간단하다. 사회심리학자~는 미국 대학생들을 상대로 그들이 '독립적으로', 혹은 '상호의존적으로' 생각하도록 유도했다. 이런 절차를 심리학 용어로 '점화(Priming)'라고 한다. (70)~
동양인들은 사회에 존재하는 수많은 상호의존적 단서들을 통해 끊임없이 상호의존적인 사람이 되도록 유도(점화)되고 있고, 서양인들은 독립적 단서들을 통해 독립적인 사람이 되도록 늘 점화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든지 독립적인 사회에서 살면 독립적 단서에 노출되기 때문에 독립적인 방법으로 사고하게 되고, 상호의존적인 사회에서 지내게 되면 상호의존적 단서에 점화되어 상호의존적인 방법으로 사고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71)

동양과 서양 내에서의 국가간 차이

~문명이 처음 시작된 소위 '비옥한 초승달 지역(fertile Crescent)'에서 점차 서쪽으로 이동할수록 개성, 자유, 합리성, 보편주의 같은 가치드이 보다 세련되게 다듬어지고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주장한다.~햄든 터너와 트롬페나의 연구 결과는 '서쪽으로의 문명의 이동' 주장과 정확하게 일치한다.즉, 서쪽에 위치한 나라일수록 독립적 가치를 신봉한다는 것이다.(73)

동양 문화권 내에서도 역시 많은 차이가 존재하며 심지어는 독립성과 상호의존성이라는 차원에서조차 차이가 있을 수 있다.(74)

논쟁하는 서양, 타협하는 동양

현대 동양 사회에서도 논쟁은 미미하게 오갈 뿐이다. ~왜냐하면 논쟁이 집단의 화목에 위험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인식 때문이다.(76)

논쟁의 전통이 없다는 사실은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 한국 사회에서 북한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며, 그 전의 정부는 사람들이 북한에 대하여 말하는 것조차 금지시켰다.~한국과 북한을 비교하여 서로의 장단점을 논하는 논쟁이 벌어진다면 모두가 한국의 우월성을 인정할 것이 자명함에도 불구하고, 논쟁의 전통이 없는 한국인에게는 옳은 주장이 결국 승리하리하는 신념이 결여되어 있었던 것이다.~

과학 논문은 연구 아이디어에 대한 개괄적인 소개, 관련 이론 기술, 구체적인 가설 기술, 연구 방법(77) 및 그 정당성 기술, 연구 결과 제시, 연구 결과가 가설을 지지하는 주장 전개, 다른 대안 주장들에 대한 반박, 기본 이론에 대한 제언급, 보다 큰 영역으로의 확장 가능성 언급으로 구성되어 있다.
미국인들~이와 같은 논리적 구조를 학습하기 때문에 대학원생 정도가 되면 이 구조를 거의 제2의 천성~그러나 동양인에게 이러한 수사구조는 상대적으로 낯선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배우는 데는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동양에서는 분쟁을 해결할 때에도 논쟁을 잘 벌이지 않는다. 대개 두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제3의 중재자를 찾는데, 이 사람의 주 임무는 정의를 실현하는 것보다는 두 당사자 사이의 적대감과 갈등을 완화시키는 것이다.(78)

 

 

리처드 니스벳(2004), 생각의 지도, 김영사

Posted by 주인공을찾는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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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자율성을 중시했던 고대 그리스

그리스인들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확신이 유독 강했다. 그 시대의 다른 문화권에서는 왕의 한마디가 곧 법이었(27)~통치자의 입장에서도 개인에게 그러한 자유를 허용하는 것은 매우 위협적인 일이었으므로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그리스인들은 ~자신의 삶은 스스로 주관하는 것이므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는 확인을 가지고 있었다.~그리스인들이 정의하는 행복이란 '아무런 제약이 없는 상태에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탁월성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개인의 자율성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강한 신념은 개인 정체성에 대한 강한 인식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들은 인간을 '독특한 특성과 목표를 가진 상호 개별적인 존재로'로 파악했다.~
'개인의 자율성'을 중시하였던 고대 그리스 문화는 자연스레 논쟁의 문화를 꽃피웠다.(28)~
논쟁은 저자거리에서도, 의회에서도 벌어졌으며 심지어는 위계 질서가 엄격한 군대 내에서도 일어났다. 다른 문화권에서와는 달리 그리스에서는 국가의 중대사에서부터 매우 사소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많은 일들이 공개적인 논쟁을 통하여 결정되었다.

그리스 문화에서는 자유와 개성만큼이나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중시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호기심이야말로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특성이라고 주장했다. ~호기심은 그리스 문화가 물리학, 천문학, 기하학, 형식논리학, 이성철학, 민속지학 같은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세우는 데 원동력으로 작용했다.(29)~

오직 그리스 문화만이 ~관찰을 통하여 어떤 '원리(principle)'를 발견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기본 원리를 추구하는 행위' 자체가 그리스인들에게는 큰 즐거움이었다. 영어의 'school'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schole'가 '여가(leisure)'를 의미한다는 것만 보아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그리스인들에게 있어서 여가란 다름 아닌 지식을 추구하는 자유를 의미했다.

개인의 '관계'를 중시했던 고대 중국

그리스에서 개인의 자율성이 중요했다면, 중국에서는 조화로운 인간 관계가 중요했다.~그리스인들에게 있어서 개인이 특정 상황에 구속되어 있지 않은 독립적인 존재였다면, 중국인들에게 있어서 개인은 '특정 집단에 소속된 구성원'이었다. 그리스인들이 연극이나 시 낭송을 관람하는 것을 특별한 일로 생각한 반면, 동시대의 중국인들은 친구나 친척을 방문하는 것을 특별한 행사로 여겼다. (30)~
그리스인들에게 행복은 '자신의 자질을 자유롭게 발휘하는 것'이었지만, 중국인들에게 행복이란 '화목한 인간 관계를 맺고 평범하게 사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그리스의 꽃병이나 술잔에는 전투나 육상 경기처럼 개인들의 경쟁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 반면, 중국의 도자기나 화폭에는 가족의 일상이나 농촌의 한가로운 정경이 자주 등장한다.
그렇다고 해서 고대 중국인들이 권력자나 가족의 권위에 한없이 휘둘리기만 하는 무력한 존재였던 것은 아니다. 단지 그들에게는 개인의 자율성보다는 '집단의 자율성'이 우선이었을 뿐이다. (31)
중국인의 일상에서 개인의 권리란 '자신의 원하는 대로 행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권리 중 자신의 몫을 담당하는 것'이었다. (32)

사물의 본질을 중시하는 그리스의 철학

본질(essence)이란 한 사물의 가장 핵심적이고 필수 불가결한 속성이다. 본질이 바뀌면 그것은 더 이상 그 사물이 아니다. 본질적이지 않은 속성은 '우연적(accidental)' 속성이다. 예를 들어 음악적 재증이 전혀 없던 사람에게 갑자기 음악적 재능이 생긴다고 해도 그 사람은 전혀 없던 사람에게 갑자기 음악적 재능이 생긴다고 해도 그 사람은 여전히 그 사람일 뿐이다. 음악적 재능은 '우연적 속성'이기 때문에 그 삶의 본질을 바꾸지 못한다.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습관적으로 행한 작업 중 하나는 사물의 속성을 분석하고, 그 추상화된 속성에 의거하여 사물을 범주화하는 것이었다. 그런 후에 각 범주를 지배하는 규칙들에 근거하여 그 범주에(35) 속하는 사물드르이 특징과, 그 사물들의 행위의 원인을 설명하고자 했다. ~'사물 자체'를 분석과 주의(attention)의 대상으로 삼는 그리스의 철학 정신에 기인한다. 그리스인들은 사람뿐만 아니라 물질 역시 서로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실체로 간주했다. ~1) 사물의 속성 자체에 주의를 기울이고, 2) 그 속성에 근거하여 범주화하고, 3) 그 범주들을 사용해 어떤 규칙을 만들어, 4) 사물들의 움직임을 그 규칙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그리스 철학의 또 다른 특징은 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는 고정된 것으로 보았다는데 있다.(36)~
그리스 철학자들은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 '직선적(linear)'사고와 '이것 아니면 저것(either-or)'의 이분법적 사고 방식에 집착했다.(37)

사물의 관계를 중시하는 중국의 철학(38)

그들에게 세상은 늘 변하며 모순으로 가득 찬 곳이다. 따라서 어떤 일이 경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반대 경우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지금은 옳다고 여겨지는 것이 나중에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음(陰)'(여성적이고 어둡고 수동적인 것)과 '양(陽)'(남성적이고 밝고 적극적인 것)은 서로 반복된다. 음은 양 때문에 존재하고 양은 음때문에 존재하며, 세상이 현재 음의 상태에 있으면 곧 양의 상태가 도래할 것이라는 징조이다.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길'을 의미하는 도(道)의 상징은 흰색과 검은색 물결의 형태를 띤 두 힘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진정한 양은 음 속에 존재하는 양이고, 진정한 음은 양 속에 존재하는 음이다'라는(39)진리를 나타낸다. 음양의 원리란 '서로 반대되면서 동시에 서로를 완전하게 만드는 힘', '서로의 존재 때문에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힘'의 관계이다.(40)

유교, 도교, 불교 모두 '조화', '부분보다는 전체', '사물들의 상호 관련성'이라는 공통 관심사를 가지고 있었다. 세 철학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종합주의(holism)'는 우주의 모든 요소들이 서로 관련되어 있다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종합주의라는 개념은 공명(resonance)현상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현악기의 한 줄을 건드리면 공명에 의해 다른 줄이 울게 되듯이 인간, 하늘 땅은 서로에게 이런 공명을 일으킨다. 만일 땅에서 군주가 나쁜 일을 하면 우주의 상태 역시 나빠진다는 믿음이 바로 이러한 종합적 사고의 예이다.(43)

그리스가 이룩한 가장 위대한 과학적 발견은 '자연계'라는 개념 자체의 발견이다. 그리스인들은 인간과 인간의 문화를 제외한, 우주의 나머지 부분으로 규정하였다. ~그리스인들은 어떻게 자연계에 대해 ~독특한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그에 대한 부분적인 해답을 그들의 객관적인 외부 세계와 주관적인 내부 세계의 구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구분은 그리스 논쟁의 전통에서 기인한 듯하다. 즉, 논쟁을 통해 남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현실에 대해 자신이 남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는 믿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현실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에 있어서 내가 상대보다 더 정확하다는 신념이 있을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설득이 가능하다.(45)
실제로 객관성은 주관성에서 비롯된다. 사람들마다 세상을 보는 시각이 제각각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면, 세상은 그러한 각각의 인식들과는 무관한 객관적인 실체라는 판단에 이르게 된다. 그리스인들의 이러한 깨달음은 아마도 그리스가 무역의 중심국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자유 무역을 통해 세상에 대한 인식이 매우 다른 사람들을 정기적으로 만났으니 말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중국은 일찍부터 통일된 문화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중국인들이 그들과 전적으로 다른 철학적. 종교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상대적으로 드문 일이었다.
그리스인들이 '자연계'의 개념을 발견하면서 과학이라는 것이 생겨났다. 중국인들이 과학을 일찍 발전시키기 못한 것은~'인간계와는 독립적인 실체로서의 자연계'라는 개념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개별 사물과 그것의 속성에 집착한 탓에 그리스인들은 아주 기본적인 인과 관계를 파악하는데 실패하였다. ~주 초점은 오로지 대상 자체이며, 그 대상을 둘러싼 외부의 힘을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이와는 달리, 중국인들은 우주를 서로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장(場)으로 보았기 때문에~(46) 그들은 어떤 일이든지 수많은 힘들이 상호 작용하는 장 안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것들 사이에서도 힘이 작용한다(action at a distance)'라는 사실은 갈릴레오 훨씬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47)
중국인들이 일찍이 우주의 복잡성을 이해하여, 사물을 파악할 때 부분보다는 전체 맥락을 중시한 점은 매우 타당한 접근~그러나 범주화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어떤 범주에 존재하는 규칙을 무시함으로써 그 범주에 속하는 개체들의 행동을 효과적으로 설명하지 못한 것은 아쉬운 점~그리스인들은 세상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어떤 사물의 추상적인 속성에 의거하여 그 사물의 행동을 설명하려 하는 과오를 범하기는 했지만, 여러 개체들을 범주화하여 공통의 규칙을 부여해야 한다는 사실만은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스인들의 범주에 대한 집착은 과학의 발전과 이후의 지적 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다.(49)

그리스인들은 '모순'이라는 개념에 강박적이라 할 만큼 집착했다. 어떤 주장이 다른 주장과 모순 관계에 있다면, 둘 중 하나는 반드시 그릇된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비모순의 원리(principle of noncontradiction)는 형식 논리에서 가장 기본적이다. 왜 유독 그리스인들만이 논리를 만들어냈는지에~그리스가 논쟁을 중시하는 사회였기 때문~논쟁을 하다보면, 어떤 주장은 스스로 모순에 빠져 금세 설득력 없는 주장으로 심판받는다.(50)

 

 

리처드 니스벳(2004), 생각의 지도, 김영사

Posted by 주인공을찾는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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