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제국의 결혼
15 과학과 제국의 결혼
어째서 군사-산업-과학 복합체는 인도가 아니라 유럽에서 꽃피었을까? 영국이 약진했을 때 어째서 프랑스, 독일, 미국은 재빨리 따라가고 중국은 뒤처졌을까? 산업화된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 사이의 격차가 명백한 정치경제적 요인이 되었을 때, 어째서 러시아, 이탈리아, 호주는 그 격차를 줄이는 데 성공했고 페르시아, 이집트, 오토만 제국은 실패했을까?(398)
중국인과 페르시아인에게 부족했던 것은 증기기관 같은 기술적 발명이 아니었다.(그거라면 공짜로 베끼거나 사들일 수도 있었다). 이들에게 부족한 것은 서구에서 여러 세기에 걸쳐 형성되고 성숙한 가치, 신화, 사법기구, 사회정치적 구조였다. 이런 것은 빠르게 복사하거나 내면화할 수 없었다. ~중국인과 페르시아인은 사회에 대한 생각과 사회의 조직 방식이 달랐던 탓에 그렇게 빨리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근대 초기에 유럽은 어떤 잠재력을 개발했기에 근대 후반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을까? 이 질문에는 서로 보완적인 두 가지 답이 존재하는데, 바로 현대 과학과 자본주의다. 유럽인은 기술적인 우위(399)를 누리기 전부터도 과학적이고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습관이 있었다.~과학과 자본주의가 유럽 제국주의가 21세기 유럽 이후 세상에 남긴 가장 중대한 유산이라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근대 과학은 유럽 제국 덕분에 번창할 수 있었다. 근대 과학이 고전시대 그리스, 중국, 인도, 이슬람 등의 고대 과학 전통에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독특한 성격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근대 초기에 이르러서였다. 이 과정은 스페인, 포르투칼, 영국, 프랑스, 러시아, 네덜란드의 제국주의적 팽창과 나란히 일어났다.(400)
무엇이 현대 과학과 유럽 제국주의 사이의 연대를 구축했을까?~
핵심요인은 식물을 찾는 식물학자와 식민지를 찾는 해군장교가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졌다는 데 있었다. 과학자와 정복자는 둘 다 무지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했다. 이들은 "저 밖에 무엇이 있는지 나는 모른다"고 말했다. 이들은 둘 다 밖으로 나가서 새로운 발견을 해야겠다는 강박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새로운 지식이 자신을 세계의 주인으로 만들어 주기를 둘 다 희망했다.
과거의 제국 추구자들은 자신들이 이미 세상을 이해하고 있다고 추정하는 경향이 있었다. 정복은 단지 '그들의'(401) 세계관을 활용하고 퍼뜨리는 것에 불과했다. ~자신들이 모르고 있던 무언가를 발견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권력과 부를 찾아서였지, 새 지식을 찾아서는 아니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유럽 제국주의자들은 새 영토뿐 아니라 새 지식을 획득한다는 희망을 안고 먼 곳의 해변을 향해 떠났다. ~ 15~16세기 포르투칼과 스페인 항해자들도 이미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지식의 정복과 영토의 정복은 점점 더 긴밀하게 합쳐졌다. 18~19세기 유럽을 출발해 먼 나라로 향한 주요 군사탐험대는 거의 모두 과학자들을 배에 태우고 있었다. 이들의 목적은 전투가 아니라 과학지식의 발견이었다.(402)
15~16세기에 유럽인들은 빈 공간이 많은 세계지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것은 유럽인의 제국주의 욕구뿐 아니라 과학적 사고방식이 발전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빈 지도는 심리적, 이데올로기적으로 비약적인 진전이었다. 유럽인들이 자신들이 세계의 많은 부분에 대해 무지하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정했다는 점에서 그랬다. 중대한 전환점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동아시아를 향한 새 항로로 찾기 위해서 스페인을 떠나 서쪽으로 항해하기 시작한 1492년에 왔다. (407)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은 과학혁명의 기초가 되는 사건이었다. 그것은 유럽인에게 과거의 전통보다 지금의 관찰 결과를 더 선호하라고 가르쳐주었다. 그 뿐 아니라 아메리카를 정복하겠다는 욕망은 유럽인들로 하여금 새로운 지식을 명렬한 속도로 찾아 나서게 만들었다. ~그들은 자신의 이론이 완전하지 않으며, 중요한 것들 가운데 아직도 모르는 것이 있다고 인정하기 시작하였다.(408)
비유럽 문화권들이 진정 세계적 시야를 가지게 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였다. 이는 유럽이 헤게모니를 잃게 된 결정적 요인의 하나였다.(419)
근대 과학과 근대 제국에 동기를 부여한 것은 ~제국 건설자들의 동기뿐 아니라 관행도 과학자들의 그것과 얽혀 있었던 것이다. 근대 유럽인에게 제국 건설은 과학적 프로젝트였고, 과학이란 분과를 건설하는 것은 제국의 프로젝트였다.(420)
언어학 공부는 현지어의 구조와 문법을 이해하는 데 더할 수 없이 귀중한 도움이 되었다.(424)
근대 유럽인들은 새로운 지식을 얻는 것은 언제나 선이라고 믿게 되었다. 제국에서 새로운 지식이 끊임없이 생산되는 덕분에, 제국에는 진보적이고 적극적인 사업이란 이미지가 붙었다.
게다가 제국에 의해 축적된 새로운 지식은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피지배 민족을 이롭게 하고 이들에게 '진보'의 혜택을 가져다줄 수 있었다. 의료와 교육을 제공하고, 철로와 운하를 건설하며, 정의와 번영을 보장할 수 있었다. (425)
유럽 제국들은 너무나 큰 규모로 다양하고 수많은 일들을 했기 때문에, 무슨 주장에 대해서든 그에 맞는 사례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
제국들은 우리가 아는 세상을 창조했고, 여기에는 우리가 그들을 평가하는 데 사용하는 이데올로기도 포함된다.(426)
인종차별 이론~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에서 인종주의가 차지하던 자리는 이제 '문화주의가'가 차지했다는 것을 말이다. 사실 '문화주의'란 말은 없지만, 이제 만들어낼 때가 되었다. 오늘날 엘리트들은 다양한 인간집단이 서로 대조적인 장점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할 때 이것을 문화 간의 역사적 차이라고 말하지, 인종간의 생물학적 차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건 그들이 타고난 속성이야"라고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그건 그들의 문화 탓이야"라고 말한다.(428)
사피엔스(2015), 유발 하라리, 김영사